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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머리앤의수다

도서관

전체 인구 열 명 중 한 명 꼴로 도서관에 들어서면 신호가 온다고 한다. 


언니랑 동생이랑 자주 다녔던 도서관.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가 책 앞에 선지 대략 1,2분 정도면 우리 셋 다 화장실행이다.

셋이 갔는데 셋다 화장실행이다. 

전인류의 공통적인 생체 반응인줄 알았는데 10프로의 인구만의 특징이란걸 알게되고 많이 놀랐다. 

다행히 그 10프로에 함께 포함된 남자를 만나 살게 되어 

나만 이상한 사람 되는 꼴은 면했다. 

아니나 다를까. 

도서관에 자리잡고 앉기 무섭게 화장실로 달려가는 아이들. 

우린 모두 특별한 사람들.


어떤 이유로든 같은 시간에 도서관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면 동질감이 느껴진다. 

책을 읽을만한 몸과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는게 일단 반갑다. 

책을 읽는것밖에는 할 일이 없는, 

도서관 말고는 갈 곳이 없는 애처로운 사연의 주인공도 제법 된다. 

도서관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군요. 라는 말을 건네고 싶어질 때도 있다. 

물론 그들에게 어떤 위로도 되지 않겠지만. 


종합자료실 군데군데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한심하다 느낀 적이 있었다. 

저럴거면 집에 가서 편히 잘 일이지 여기서 왜 저런다냐.

저렇게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니 나같은 사람은 편히 앉지도 못하는거 아니야.

그런데. 

그러던 내가..

순식간에 잠이 들었고, 

아이들이 큰 소리로 엄마를 찾으며 도서관 진상짓을 하는 소리에 놀라 책을 떨어뜨리며 눈을 떴다.

눈을 뜨며 눈을 마주치게 된 여학생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도 내가 이럴줄 정말 몰랐다 얘야..

너도 애 둘 낳고 날마다 도서관 끌려 다녀보면 날 이해할 수 있겠니?

붙잡고 변명하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고, 그렇다고 하기엔 짧은 그 잠이 너무 개운해서 기분이 상쾌했다. 


이해의 폭이 또 한 걸음 넓어졌다. 

책을 꼭 잡고 잠든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연민. 그리고 동질감.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그 곳에서 그렇게 부끄러운 낮잠을 청할 수 밖에 없는 그들.

아니. 우리들.


같이 옥상에 올라가 커피 한 잔 하시자고 맘속으로 실실 웃으며 말을 건네보는 상상. 

그렇게 안 생기셨는데 참 잠이 많으시네요. 

어머. 그러는 댁도 도서관 다니게는 안 생기셨어요 호호호

집에서 낮잠을 자면 두통이 오는데, 여기서는 잠깐을 자도 아주 개운합디다 껄껄껄.

상상 속의 모임.

도자기.

도서관에서 

자는 

기이한 사람들의 모임.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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