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의 라디오, 참 얄궂다.
라디오를 켠 것도, 그 채널에 맞춘 것도 분명 내가 아닌데 불쑥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처럼 얄궂은 게 없다.
독심술이라도 쓰는걸까. 달달하고 부드러운 노래가 훅 들어온다. 어쩜 그렇게 달달한지 노래 한 곡이 끝나간다는게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보는 것처럼 아깝고 아쉽다.
이 곡을 신청한 고마운 청취자는 어디 사는 누구일까, 그 많은 신청곡들 중 이 곡을 선택해서 전파에 실어보내준 피디는 얼마나 마음씨 좋은 사람일까. 안봐도 훤하다. 엄청난 미남이거나 대단한 몸매를 소유한 미녀이거나.
내가 오늘. 바로 지금. 듣고 싶은 노래를 한 번 맞춰봐. 라는 심술궂은 마음으로 라디오를 켠다. 바쁜 척. 라디오는 그냥 한 번 틀어놓은 것 뿐인 척 무심한 척 해본다. 온 신경이 라디오에서 나오는 다음 곡을 향해 있으면서도 아닌 척한다. 혹시라도 싫어하는 노래, 잘 모르는 노래가 나오면 뭐 큰 상관 없거든. 그럴 줄 알았거든. 큰소리 칠 수 있으니 일단은 마음을 꼿꼿하게 가다듬는다.
그렇게 아닌 척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겨우 5분도 안되는 단 한 곡의 노래로 저격당해버린다. 맘을 뺏긴다.
지금은 내 옆에 있지 않은 어떤 사람들의 그 옛날 싱싱했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거지꼴로 활보했던 암스테르담의 어느 거리가 느닷없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이렇게 단숨에 무너질거였나 싶다. 자존심 상하게도 라디오와의 아슬한 밀당이 끝난다. 오늘도 졌다. 깨끗하게 졌다. 그 한 곡의 노래로 오늘 하루는 그냥 끝났다. 하루 종일 이 노래만 흥얼거리게 될 게 뻔한데 내가 졌다고 깨끗이 인정하는게 좋겠다. 피디님. 당신이 이겼소. 이겨줘서 고맙소.
전주의 첫 소절만 들어도 마음이 쿵 하는 노래가 있다. 그래 맞아. 내가 이 노래를 참 좋아했었는데. 이 노래를 듣고 또 들으며 따라 부르던 때가 있었는데. 첫 소절만으로도 눈물나게 고맙다. 그게 음악인가보다.
수많은 예술하는 젊은이들이 머리를 싸매고 이렇게 달달한 노래를 만들어줘서 진심 고맙다. 모르긴 몰라도 그들은 대부분 부모 속을 어지간히도 태워 가며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음악 나부랭이 하는 속썩이는 아들 딸일 뿐이었겠지만 그런 그들이 고맙다. 내 맘을 흔들어줘서 고맙고, 눈앞의 내 현실을 잊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 그들이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여 그저 책상 앞을 지켰다면, 기타 대신 수학 문제집을 손에 들었었다면 오늘 오후 5시 24분. 내 맘을 흔들어준 이 노래는 세상에 없었을 거다.
나는 늘 그랬든 딱히 불만은 없지만 조금도 설레지 못한채 오늘의 해가 넘어가는 이 중요한 시간에 일-직장일, 가사일 딱 둘 중 하나다-에 파묻혀 있었을거다.
오늘도 평범하고 지루한 하루지만 다친데 없고 아픈데 없이 잘 보냈구나 라는 만족을 가장한 소심한 불평을 하며 말이다. 노래 한 곡으로 내가 있던 우리집 부엌은 프라하 민박집의 공동 주방이 되고, 그 노래 한 곡 덕분에 내 책상은 로마 시내의 어느 까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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