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다면
정말 원하는게 있다면 발가락이라도 움직여보아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진심으로 셋째를 낳고 싶다며 로또가 당첨되기만 하면 바로 셋째를 가질거라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일 년에 두세번 정도 로또를 산다고 한다. 그 친구가 로또에 당첨되거나 세 아이의 엄마가 될 일은 없을거라 장담한다. 그 친구가 진정으로 바라는 바 역시 같을거라 생각한다. 그 친구가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로또 구입을 위해 오천원을 투자하고 있다면 조금은 더 진실성이 느껴질텐데. 이대로 그녀의 진실성과 그 가정의 셋째 아이는 세상빛을 보지 못한다.
그런 바램은 '정말로' 원하는게 아니다. 간절히 바라지 않는건 그냥 스쳐가는 한 번의 생각일 뿐 바램이 아니다. 오늘 저녁으로 해물찜을 먹고 싶다거나, 봄이 오기 전에 화사한 블라우스를 하나 사고 싶다거나 하는 평범한 생각 이상은 못된다.
간절히 원하는 삶은 생기있다. 반짝반짝 빛난다. 무엇을 원하건 간절히 원하는 삶은 비슷한 밝기로 빛난다.
41년의 숙원이었던 운전면허 도로 연수를 다닐 때의 생기넘치던 동네 언니의 얼굴은 이제껏 본 것 중 최고였다. 우여곡절 끝에 면허증을 손에 넣고 나자 언니는 다시 예전의 평안함을 되찾았지만 얼굴과 눈빛 어디에도 시험 전의 생기와 간절함은 보이지 않았다.
스무살 때 여동생과 함께 바닷물에 빠져 서로의 머리채를 휘어 잡으며 죽어갈 뻔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생긴 공포를 무려 18년 동안 안고 살던 내가 눈 질끔 감고 수영 수업 등록을 했다. 새벽반이었음에도 대낮에 트름을 하면 갑작스런 락스물맛이 느껴질 만큼 많은 물을 들이켰다. 빈 속에 한 시간 동안 수영을 해도 허기지지 않을 정도였으니 내 수영 실력은 불쌍했다. 간절함이 생겼다. 다들 하는 자유형으로 25미터 완주를 하고 싶은 간절함이 생겼다. 낮에 아이들과 부대끼다가도 오늘 새벽에도 이루지 못한 자유형의 소망이 떠올라 마음이 수영장에 가있기도 했다. 그런 간절함으로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 수영반에 나갔다.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수영 얘기에 열을 올렸다.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오랜 친구들을 만나도 새삼스레 그 친구가 수영을 하는지가 궁금했고, 지난 주에 새로 알게된 아이 친구엄마를 봐도 수영을 배워본 적이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자유형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뉘어졌다.
락스물에 견디지 못하고 뒤집어져버린 피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환불을 받고 그만둬야 했고, 수영과는 점점 멀어져 갔다. 만나는 사람을 붙잡고 수영에 대해 눈을 반짝이며 질문하던 나는 없어져버렸다. 그렇게도 하고 싶던 자유형은 물론이고 배영, 평영까지 능숙하게 하게 되어버렸으니 더 이상 간절하게 바랄 건 없었다.
돌이켜보니 지난 일 년 중 가장 생기넘쳤던 시간은 자유형이 될듯될듯 안되고 물만 주구장창 먹어대던 그 때쯤인듯 하다. 막상 기적처럼 자유형으로 레인을 완주하고 나고부터는 어딘가 모르게 시들해졌다. 배영과 평영은 또 그럭저럭 쉽게 익혔으니 더 이상 눈을 반짝이며 덤빌만한 목표가 없어진거다.
10분이라도 먼저 물에 들어가 몸을 풀고 한 바퀴 돌아보고 싶은 마음에 5시 30분도 안된 이른 시간에 용수철처럼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었다. 강습이 끝난 6시 50분이 되어도 한 바퀴 더 돌고 싶은 욕심에 물 속에 남아있곤 했었다. 누가 시켰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내가 끌고가 물 속에 집어넣었던 규현이는 수영장 가는 날이면 집에서 주차장 가는 길까지도 걸음을 늘어뜨렸다. 끌려가는 어린이의 모범을 보였다.
두 달을 머리아픈 고민 끝에 드디어 두 번째 책의 제목과 목차가 완성됐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드디어 정말 원하는 나의 책을 찾았다. 모르는 얘기는 쓰지 말자. 아는 얘기는 확실하게 쓰자. 나의 경험과 생각들이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어떤 정보가 될 수 있다. 첫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깨달음이다. 나를 위해 쓴 책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누군가 많은 이들이 도움을 얻었단다. 또 내가 도움을 줄만한 사람을 찾아 어슬렁거려보자.
내 생애 마지막 육아휴직의 6개월을 시작한다. 간절히 원하는 바를 향해 발가락과 손가락을 움직이자. 꼼지락거리자. 진정 원한다면 행동으로 보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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